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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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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기원전 고대속으로 떠난 고대문명의 발상지 이집트 여행. 1편~7편
작성자 sw32**님(고객) 작성일 2018-12-06 조회수 1,198
지역
해외패키지인도|아프리카아프리카

[다녀온 상품][★전일정특급호텔/나일크루즈]석양에 물든 황금빛 피라미드, 문명의요람 이집트 9일

2018.11.12~20 이집트여행 1편 이집트 고대 박물관.. 1편

지난 11월 12일밤 인천을 출발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 했다.
카이로는 국적기 직항이 없는 곳이다.
그동안 몇번이나 와보려고 하였으나 IS테러 사건으로 우리 여행객이 2명 희생된후 10여년 동안이나 여행 제한 지역으로 지정 되었고 그후 다소 완화되어 이집트 경찰 경호를 받으며 여행을 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풀린것은 지난 해 부터다.
그동한 독재 군부의 장기 집권과 민주화 운동 쿠테타 우여 곡절이 많았다.

요번엔 노랑풍선의 좋은 상품으로 소원을 이루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이집트 여행은  역사의 기원을 훌쩍 넘는  먼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다.
나일강을 따라 발생한 이집트 문명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무엇보다 현재 서양문명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그리스 문명이 자랑하는 면면들이 이집트 문명으로부터 전수된 것이라는 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인 이집트는 동쪽으로는 이스라엘·아카바 만·홍해와 접해 있고, 남쪽은 수단, 서쪽은 리비아, 북쪽은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집트가 아랍 중동으로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이집트는 북아프리카다.

이집트 영토는우리 남한의 10배 수준이며  남북길이 1,055km 남쪽 국경선에 면한 동서 최대너비는 1,250km다.
그리고 수도는 카이로이며 카이로 인구는 2.800만명이다
전체는 인구는 1억 수준이며 우리 교민은 5천명 수준이다.
한국과는 1961년 12월 영사관계를 맺었으며, 이어 1962년 5월 카이로에 한국 총영사관이 설치되었다.

이집트에는 겨울(11∼3월)과 여름(5∼9월) 두 계절만 있다.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
그리고 이집트는 우기가 없고 비가 없다 년 강수량이 40미리 수준이다
물은 남아프리가  빅토리아 폭포쪽에서 북아프리카로 흐르는 나일강이 젖줄이고 나일강 줄기를 따라 강유역에 모두 모여산다.

이집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이집트는 부분적으로 자유기업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가진 개발도상국이며, 산업의 약 70%가 국유화되어 있다.

이집트는, 경관의 지배적인 특징인 북류하는 나일 강에 의해 크기가 다른 극도로 건조한 두 지역으로 나뉜다.
보다 큰 사막지대인 서부 사막(앗사흐라알가르비야)은 와디(건천)가 없는 낮은 대지이며, 보다 작은 동부 사막(앗사흐라앗샤르키야)은 석회암과 사암층의 대지로 와디에 의해 널리 개석되어 있으며, 남동부에는 험준한 산들이 솟아 있다.

동부 사막의 북동부에 있는 시나이 반도에도 와디가 많다.
시나이 반도 남부 산지에는 해발 2,642m의 이집트 최고봉인 캐서린(카트리나) 산이 있으며 동부 사막의 홍해 구릉지대(이트바이)에는 해발 1,800m가 넘는 산이 많다

나일 강은 이집트 영내에서는 중요한 지류가 없으며, 가파른 벼랑들 사이에서 대략 8∼16km 너비의 바닥이 평평한 유역을 따라 흐르다가 카이로 북쪽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갈라지며 삼각주 저지대를 이룬다.

이집트는 도로의 포장률은 70% 이상이다.
내륙수로는 총길이가 3,200km를 넘는데, 160km가 넘는 수에즈 운하를 제외하면 전부가 나일 강 수로이다.

수에즈 운하로는 해마다 2만여 척의 배가 지나다닌다.
정부 소유의 이집트항공에서 국제·국내 항공편을 제공한다.
수출은 주로 원유와 정제품 및 면직물과 면사로 이루어지며, 이집트의 최대수출국은 이탈리아이다.

수입액은 통상 수출액보다 훨씬 많다.
주요수입품은 식료품, 기계류와 전기기구, 수송장비, 화학제품 등이며, 주로 미국·독일·프랑스로부터 수입한다.
해외근로자들의 송금이 큰 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도착 그 첫날 13일은  카이로 시내에 있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대 박물관과 기자 피라밋을 둘러 보았다.

박물관은 카이로의 중심 타흐리르 광장에 위치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화려한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이집트 카이로의 관광명소 란다.
이집트 박물관의 100개가 넘는 전시실에는 투탕카멘 왕의 유품과 미라 등 10만여 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박물관내 사람들도 많고 소장품이 대부분 유리 상자속에 들어 있어 촬영이 원활하지 못하며 카메라 사용도 금지 된지라 핸폰으로 촬영한 것이라 별로입니다.

이제 고대 벅물관에 도착 했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19세기에 세웠으며 이집트 고대 유물 소장품에는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것들도 많다.
1858년 불라크에 세워져 기자로 옮겼다가 1897~190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한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웅장한  석조상들이 우리를 압도 한다.
이제 박물관 내부로 들어간다.

이 박물관은 이집트 문명의 전역사, 특히 파라오 시대와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대 유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박물관에 있는 10만 점이 넘는 유물 중에는 투탕카멘의 머리를 덮고 있던 순금제 가면을 비롯, 파라오의 무덤에서 출토된 약 1,700점의 유물이 있다.

그밖에 각종 부조·석관·파피루스, 장례용 예술품 및 헤테페레스 여왕의 무덤을 포함한 여러 무덤의 내용물, 보석, 모든 종류의 장신구, 기타 유물이 있다.
대형 전신상으로는 가장 빠른 시기에 속하는 헤테페레스 여왕의 대형 조각 1점과 흑색 화강암으로 만든 네페르티티 왕의 조각 1점도 소장되어 있다.

또한 이집트 박물관은 아멘호테프 2세가 테넨 신으로 묘사되어 있는 그의 조각, 핫트솁수트 여왕의 화강암 상 2점과 카르나크에서 발견된 엄청난 크기의 아멘호테프 4세의 상을 소장하고 있다.

우린 먼저 현지 가이드 설명 부터  들으며 전시품들을 둘러 본다.
박물관 내부는 9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전시 유물도 엄청나서 우린 그중 중요한 곳들 일부분만 둘러 보게 된다.

가이드가 중요한 유물들을 둘러 보면서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었는데 유물들 마다설명을 붙이려니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햇갈려서 잘못 설명을 달면 혼선이 일어날 염려가 되어 생략 하기로 한다.
사진과 설명을 대비 시켜서 비교 해 보려니 정확한 목록이 없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오래된 문자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침략자의 지배를 너무나 여러 차례에 걸처 오랫동안  받아온 아픈 역사로 인해 발전을 못했다.

이집트는 무려 20여 세기 동안에 걸쳐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서 침략과 지배를 계속받았다.
그래서 문자도 언어도 모두 골동품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유적들을 약탈도 당하고 위정자들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상대에게 줘 버리기도...

이집트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은 투탕카멘 왕의 황금잔과 황금 마스크란다.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2,099점의 유물들은 고스란히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했다

우린 박물관을 둘러 본후 피라미드의 도시로 불리는 기자 지역으로 출발한다.
어릴때 부터 이집트 하면 제일 먼저 뜨오르는 것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상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카이로는 물론 세계적인 문화 유적이다.

.이곳의 입장료는 160파운드 17파운드가 대략 1달러 수준 한화로 약11.000원 수준이다

비스기인 요즘도 하루에도 엄청난 숫자의 방문객이 찾는데 물가가 싼 이집트 로서는 큰 수입이다.

참고로 석류 오랜지 바나나 를 1불 어치 구입 해서 3사람이 다 못을 정도의 물가....

이어서 2편 이 준비 되는 데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노랑 풍선의 이 상품을 적극 추천 합니다.

모든 여행기를 미리 보실려면 https://band.us/@gu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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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14편으로 나누어 자세히 올리려고 준비 해 두었는데 1인 한편 밖에 안되는 시스템이네요.

해서 간편히 2편을 이어 봅니다. 얼마 만큼 용량이 주어질ㅈ; 의문이지만 시도 해 봅니다.

#아프리카 #이집트 #카이로 #기자피라미드
2018.11.13. 이집트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 & 스핑그스 2편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후 두번째 들린곳은 카이로 외곽에 있는 기자 피라밋과  스핑거스상이 있는 기자지녁 유적지다..
이집트 하면 제일 먼저 뜨오르는 것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상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상이 이집트의 카이로는 물론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이집트의 기자 지역에 위치한 3개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70여 개 피라미드 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단다
이 3대 피라미드는 .고대의 제4왕조인 쿠푸 왕과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대에 왔어는 이 피라밋은 묘가 아니라 왕이 사후세계를 위해 세운 기념 건축물이라고들 말하는 학자들도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왕의 피라밋 내부에서 그들의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유일하게 왕의 미라가 발견된 곳은 사카라 피라미드 하나뿐이란다.
우린 이제 기자 지역의 유적들을 살펴 보러 간다.

기자 지역으로 가면서 차창가로 본 카이로 시가지 모습들....

이제 입장권을 받고 내부로 입장한다.

기자 피라미드
기자 피라미드는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라왕 즉 아버지, 아들, 손자의것으로 3개가 있고, 사면의 피라미드 벽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피라미드는 4각 뿔 모양의 그리스 빵(피라미드)을 닮았다고 그리스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란다.

기자 피라미드 3개중에 가장 북쪽에 있는 피라미드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피라미드가 제4왕조 2번째 왕인 쿠푸가 세웠단다.
이 피라미드는 대피라미드라고도 하며, 밑변 평균 길이가 230.4m, 높이 147m이란다.
그런데 석회석의 외벽도 거의 모두 벗겨져버렸기 때문에 피라미드들의 높이가 원래보다 낮아져 대피라미드도 지금은 138m 높이에 불과하단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대피라미드를 짓는 데 20년이 걸렸으며 성인 남자 10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위 3개 피라미드중에 사진에서 왼쪽 가장 북쪽에 있는것이 바로 위의 사진인 쿠푸왕 피라미드다

쿠푸왕 피라미드 꼭대기 부분의 모습...

위 사진에서 3ㅐ의 피리미드중 가운데 피라미드는 제4왕조 4번째 왕 카프레가 세웠고 각 밑변길이 216m, 높이 143m이다.

이 카프레왕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보면 쿠푸왕것과는 달리 경사면이 상층부 피라미드의 겉면이 모자른 쓴듯 매끈해 보인다.

원래 이집트 피라미드의 사면은 이렇게 매끈하였지만
정육면체를 쌓은 형태로 계단모양으로 남게된 것은 피라미드 화강암 외장석을 후대의 왕조가 그들의 건축물을 지으려고 모두 벗겨다가 건축물의 재료로 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아직도 외장용 화강암이 일부 남아있다

위 사진에서 남쪽 끝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피라미드로제4왕조 6번째 왕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로 밑변길이 109m, 높이 66m이다.

그리고 피라미드 사진이 붉은 색과 검은 색은 일몰이 가까운 시간의 햇볕을 등진 사진과 햇볕을 바로 비추인 차이다.

여기서 나도 이집트에 온 인정샷을 한컷 담았다.

이 건조물들은 원래 죽은 왕의 시신을 모신 피라미드와 이에 딸린 장제전이 있었다고한다.
그리고 장제전에서 나일 강 가까운 계곡에 있는 사원으로 통하는 경사진 둑길로 구성되어 있었단다.
각 피라미드 옆에는 다른 왕족의 무덤으로 쓴 보조 피라미드가 1~2개가 있다.

3개의 피라미드는 내부와·외부가 모두 고대에 이미 도굴당해 시체 안치실에 있던 부장품들도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불신도.....

이곳 3개의 거대한 피리미드중 쿠푸 피라미드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단일 건축물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란다.
옆면 경사가 51°52'이며 밑변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해 있다.
대피라미드의 중심부는 황색 석회암 벽돌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거의 없어진 바깥벽과 내부 통로는 그보다 고운 입자의 옅은 색조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의 시체안치실은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었단다.

이 거대한 피라미드는 1개당 평균 2.5t 무게의 돌 230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쿠푸왕 피라미드는 다른 두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술적 정교함이나 공법에서 탁월한 걸작품이란다.

특히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사용된 돌 덩어리들의 크기와 무게를 고려할 때 설계의 기하학적 정밀성이나 돌을 깎은 정확도는 감탄할 일이다.

아직 제자리에 남아 있는 외벽 돌들은 그 무게가 16t까지 나가는 것도 있지만 이 외벽 돌은 물론 내벽까지도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세계 어느 곳의 석조건축물 보다도 더 정교하게 시공되고 쌓아져 있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입구는 북쪽 측면, 지상 약 18m 위에 있다.
입구에서 비탈져 내려가는 복도는 피라미드 내부를 경사지게 내려가 피라미드가 서 있는 돌이 많이 섞인 표토층을 지나 완성되지 않은 지하실에서 끝난다.

이 하강 복도는 올라가는 복도로 연결되는데, 이를 따라가면 여왕의 방으로 알려진 방과 46m 길이의 커다란 경사진 회랑이 나온다.
이 회랑의 윗부분에는 흔히 왕의 방으로 불리는, 시체안치실로 통하는 길고 좁은 통로가 있단다.

왕의 방 내부 벽과 천장은 모두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이 방에서 2개의 좁은 구멍이 내부를 비스듬하게 통과해 외부로 나 있는데,
이것이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 통풍을 위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단다.

왕의 방 위쪽에는 거대한 화강암 석판이 수평으로 배치된 5칸의 방이 있는데, 석판을 설치한 목적은 시체 안치실이며 천장에 놓인 석재 덩어리들이 누르는 엄청난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드를 세운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한 해답이 없으나 당시 이집트인들은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는 기계와 도르래가 없었으므로 벽돌·흙·모래로 제방을 쌓고 그 제방 위로 썰매·굴림대·지렛대를 이용하여 돌을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방은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면서 점점 높고 길어졌을 것이다.

우린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는 못 들어 가보아도 앞쪽에 있는 다른곳은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태양의 신 배가 있던 자리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바닥이 정4각형이고 위로 사면체로 올라가는 대표적인 피라미드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이집트의 피라미다는 하나의 형태가 아니고 기자 지역 피라미드의 형태로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는 사카라  죠세르왕 피라미드다.
죠세르의 재위기간은 2667-2648 BCE으로 진흙 벽돌로 지은 계단형 피라미드다.
그 피라미드는 기자에서 남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멤피스가 이집트의 수도였을 당시 이집트 왕실의 묘역이었던 곳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중 두 번째 형태는 벤트피라미드 다.
말 그대로 구부러진 피라미드로 기원전 2613-2589 년 (지금부터 약 4600년전) 동안 통치한 Sneferu왕이 만들었던 3개 피라미드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피라미드다.

세 번째 모양의 이집트 피라미드는 바로 이곳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 와 같은 형태의 것들이다.
이 형태는 사실 죠세르왕이 세운 붉은 피라미드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이곳의 쿠푸왕 피라미드가 가장 잘 알려져있다.

그러니 이집트 피라미드는 처음부터 이 모양이 아니고 수백년동안의 실험을 거치면서 변천 해 온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대 피리미드1개를 세우기 위해 최소 3만명이 3교대로 그먼  아스완 채석장에서 25톤짜리 250만개의 돌을 옮겨왔다고 생각하니 상상 초월의 대역사다.

죽은 후에도 왕이 되고자 했던 이집트의 왕 한사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국민이 채찍을 맞아가며 돌을 나르고, 눈물과 한숨 속에서 돌무더기에 깔려 희생당하고 죽어갔을까
인간 아닌 노예로 핍박받는 이스라엘 국민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이집트를 탈출하는 모세의 행렬이 생각난다.

1925년 쿠푸의 둑길 상단 가까이에서 쿠푸의 어머니 헤테페레스 여왕의 장비(葬備)를 담고 있는 구덩무덤이 발견되었다 한다..
돌이 들어찬 깊은 구덩의 밑바닥에는 여왕의 빈 돌널]이 제4왕조 장인들의 탁월한 예술성과 완벽한 기술을 보여주는 가구와 보석들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3개의 대형피라미드 둘레에는 왕들의 친척이나 대신들의 장지로 사용된 '마스타바'로 불리는, 꼭대기가 평평한 장례용 구조물의 분포지가있다.

기자에는 격자모형으로 늘어서 있는 제4왕조의 중심적 마스타바를 비롯한 많은 마스타바가 발견되었는데, 이중 몇 개는 제3왕조(BC 2650~2575경)의 것이고, 나머지는 제5~6왕조(BC 2465~2150경)의 것이란다.

전체 피라미드를 모두 관망 할수있는 파노라마 전망대쪽 기념품 노점...

이제 스핑크스 상이 있는뒷쪽 출입구로 향한다.
그쪽으로 가면서 피라미드옆 가건물 같은 곳이 보였는데 그 속에도 유물이 많고 아직도 발굴 작업중이란다

대피라미드의 남쪽 카프레 계곡 사원 부근에는 대 스핑크스상이 있다.
위산을 깎아 만든 이 스핑크스는 얼굴은 카프레 왕이고 몸은 누워 있는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길이는 약 73m, 높이는 20m에 달한다

스핑크스(아브르 호르)는 아랍어로 "공포의 아버지"란 뜻으로 인면수신(人面獸身)의 형상으로 하나의 돌에 조각한 것이다.
머리는 지혜를 상징하는 바로 왕의 모습이며 몸은 힘을 상징하는 사자의 몸을 조각하였다.
그 유명한 스핑크스를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가 기자지역에 갔을때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앞면에서 촬영한 사진은 모두 색감이 안좋다.

이제 카이로에서 야간 침대 열차를 타고 잠을 자면서 아스완으로 간다.
처음 내가 예약을 할때는 카이로에서 일박하고 새벽 4시에 공항으로 이동후 아스완 까지 야간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첫날은 비행기로 오면서 기내 일박을 해서 피곤한 하루였는데 늦은밤 호텔에서 자고 새벽 출발 보다 침대 기차에서 자고 나면 아침에 아스완에 도착하는것이 한결 좋은것 같다.
대신 여행경비는 10만원 할인 해 주었다.

입장권 240 파운드 1달러 17파운드 한화 약 16.200원
이곳 물가에 비하면 엄청 비싼 금액이다
비성수기인 요즘도 하루에 몇천명은 다녀 간다는데 상당한 수익을 창출한다.
조상을 잘둔 조상 보다 못한 후세들의 복이다.
치안만 안정되면 고대 문화를 보러 오는 세계인들이 엄청 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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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이집트 아스완  미완성 오벨리스크 아스완댐 3편

일정 2일차 현지 1일차인 13일 야간 침대 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14일 아침에 이집트 남부 아스완 에 도착했다.
야간 열차는 낡고 들꺼덩 그리고 우리나라 7~80년대 수준의 것이 였지만 전날 기내에서 쪼그리고 앉아 자면서 왔기에 별 불편함을 못 느끼고 피로에 지쳐 잠들어 버렸다.

좋은 경험이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예전 중국 실크로드 여행을 하면서 우루무치에서와 인도 여행때 문바이를 가면서 타본 것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스완은 이집트 남쪽 나일강 상류 방향의 수단과 국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일강 최대의 댐인 아스완 댐으로 지명이 널리 알려졌다.
보통 관광객이 아부심벨 대신전으로 가기 위해 아스완 하이댐을 많이들 들른다.

우린 나일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는 많은 유적지들을 돌아보기 위해 카이로에서 밤새 야간열차를 타고 나일강 상류에 있는 아스완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온것이다.

우리의 코스는 아스완 주변 유적들과  아스완댐 그리고 아스완 댐 공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있던 아부심벨을 본후  다시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따라 크루즈선을 타고 숙식을 하면서 중요 기착지 마다 내려 가면서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긴  나일강은 적도지방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여 6, 671km를 흘러 남쪽에서북쪽  지중해로 들어간다.
나일강이 바다에 닿기 1,000km 쯤 전에 아스완에 있는 ‘나일강의 제 1폭포’를 통과하는데, 이곳에서 부터 마지막 1,000km 구간 지중해에 이르는 유역에서 세계사에 길이 남을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우린 아스완 역에 내려  첫번째 들린곳이 하트셀수터 2세 여왕을 위한 43미터 높이의 화강암 오벨리스크를 제작중 자르는 과정에서 균열이 생겨 중단된 화강암 채석장의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감상 했다.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나일강 아스완댐과 하이댐 관망후 아스완에서  3박4일 나일강 크루즈를 시작 크루즈선에 책크인 후 샤워를 하고 휴식후 크루즈선에서준비 해준 뷔페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해질 무렵에 있을 나일강 센셋 페루카 유람 선셋 시간 까지 휴식을 했다.


아스완은 나일 강의 범람원과 인접지역들로 이루어져 있다.
길고 좁은 모양의 아스완은 이집트의 나일 강변 최남단에 있는 주이며, 짧은 남쪽의 경계선은 수단과의 국경선의 일부를 이룬다.

나일 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사암·화강암·섬록암의 언덕들은 말라버린 지 오래된 옛 하천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도인 아스완과 수단 국경도시인 와디할파에서 나일 강은 화강암층을 뚫고 흐르는데, 암층을 서서히 침식하여 강 가운데에 폭포로 불리는 급류와 섬들을 만들어냈다.

이것들은 수상교통에 장애가 되었고, 그결과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에 아스완을 국경으로 정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아스완 시의 바로 상류 쪽에 옛 아스완 댐이 있으며, 그곳에서 상류쪽 약 6㎞ 남쪽에 세계적인 대토목공사로 1970년에 완공된 아스완 하이 댐이 있다.

이 댐에서 남쪽으로 수단 국경까지 거의 240㎞나 되는 구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구릉성의 사막과 불모지로 도로도 없고 철도도 없었다.
본래의 강 유역은 범람하여 나세르 호가 되었고 1968년 하이 댐이 가동되면서 부터 아스완 주에서 여름에만 관개되던 많은 토지가 연중 관개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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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시의 북쪽 지역에는 사탕수수·렌즈콩·옥수수·밀 등이많이 경작된다.
아스완 주의 산업은 하이 댐과 카움움부 시, 이드푸 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두 도시에는 제당공장들이 여러곳 있단다.
아스완 시 주변에서는 오래 전부터 화강암이 채석되고 있으며, 근래에는 대리석 채석장들이 생겼다고 한다.

아스완 주는 고대의 기념물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관광지로서도 각광받는 곳이다. 1960년대에 나세르 호의 수위가 높아져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이집트의 신전들이 국제학술기관의 대대적인 보존사업에 의해 고지대로 옮겨졌는데, 가장 복잡한 공사가 수행된 곳은 아부심벨과 필라에였다.

우리는 기차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아스완 역에 내려 대기하고 있던 버스편으로 아스완의 남쪽 변두리에 있는 오벨리스크 채석장으로 향했다.

이곳 아스완엔 고대 이집트에서  중요한 채석장이었단다.
오벨리스크, 석상, 석관의 심지어 피라미드 구조물 까지도 대부분은 아스완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스완의 남쪽에 있는 오벨리스크 채석장에 도착하니 그곳에 만들다 만 길이 42m, 바닥면적 4㎡의 거대한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누워있었다. 
이 오벨리스크는 원래 카르나크 대신전의 투트메스 3세 신전 앞에 세우려 했던 것인데 만드는 도중 결함이 생겨 그만 둔 것이라 한다.
만일 이 오벨리스크가 완성되었다면 아마도 이집트에서 가장 큰 오벨리스크가 되었을 것이라 한다.

이 곳 채석장의 흔적으로 추정을 해 보면, 바위에서 잘라낼 부분에 홈을 파고 그 속에 나무 쐐기를 박은 다음 물을 부으면 나무 쐐기가 물에 불어서 바위가  자연스럽게 갈라 졌을 것이라 한다.
이렇게 만든 거대한 오벨리스크는 나일강의 물이 불어나면 배로 옮겨 졌다고 한다

.왼쪽은 배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오벨리스크가 차질없이 완성되었다면 산을 마저 깎아 비탈을 만들어서 오벨리스크를 배에 실었을 것이라고 한다.
배가 들어오기로 예정되어 있던 이 공간에는 당시의 벽화도 남아있었다.

화강암을 갈아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데 쓰였던 검은 주먹돌.

이제 아스완 댐으로 왔다.
이곳이 아스완 로우 댐이고 나일강을 땨라 약 6km 상류쪽에 아스완 하이댐이 있다.
이 아스완 로우 댐은 1902년에 완공되었으며, 1912, 1933년에는 댐 마루를 높였다.

아스완댐은 크게 하이 댐과 로우 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있는데 하이댐은 세계 3대 댐 중의 하나로 이집트 전체에 물과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의 아스완 댐 건설 목적은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관개 및 농경을 위한 전력 발전이다.
나일강은 매년 여름마다 종종 범람했다.
고대 부터 수천년간 반복된 이러한 홍수는 유역의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한편 많은 이로운 광물을 배출하면서 농경의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해서 강 주변 거주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목화재배지와 농경지를 보호하고 한편으로 조절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댐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던것이다.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되며 전체 부피가 대피라미드의 100배가 넘는 거대한 인공호수 나세르호가 사막 속에 탄생했다.

그 크기가 매우 광활하여 호수가 아니라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이 댐은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문화유산 수몰을 막아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이집트 아스완에 세워진 이 댐은 1970년에 완공되었으며(1972년 정식으로 개통), 약 10억 달러의 경비가 소모되었다.
이 댐의 높이는 111m, 댐 마루부 길이는 3,830m, 부피는 4,430만㎥에 이르며, 이 댐의 저수지인 나세르 호의 총용적은 1,690억㎥에 이른단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댐이다.

나일 강의 1년 총방류량 중에서 약 740억㎥의 물이 이집트와 수단 인접 양국간의 협정에 의해 555억㎥는 이집트에, 나머지는 수단에 분배된다.
이 댐의 건설로 나세르 호는 이집트로 약 320㎞, 수단(상류)으로 160㎞ 이상 확장되었는데, 이때문에 아부 심벨에 있는 고대 이집트 신전이 물에 잠기게 되자 많은 비용을 들여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9만 명의 이집트 농부와 수단 누비아 지역의 유목민이 이주를 해야 했으며, 5만 명의 이집트인은 아스완의 북쪽 50㎞ 지점에 위치한 카움 움부 계곡으로 이주해 누바리아라는 새로운 농경지구를 형성했고, 대부분의 수단인은 수단의 카슴 알키바 근처에 다시 정착했다.

 

아스완 하이 댐은 이집트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으며, 해마다 발생하는 나일 강 홍수를 사상 처음으로 통제했다.
이 댐은 홍수 때 물을 저장한 후 적절하게 방출하여 관계농지의 효용성을 높이고, 수십만 ㏊의 새로운 땅에 물을 공급하고, 아스완 근처의 운항을 더욱 원활하게 했으며 엄청난 양의 전력(210만kW)을 생산했다.

아스완댐의 가장 처음 구조물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1889년 시작하였으며 공사 기공식은 1902년 12월 10일에 열렸으며 공사에는 영국 내 저명한 건축가 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1910년대에 이르러 처음의 공사 양식이 적합치 않다는 판단이 대두하면서 한 차례 증축 공사를 하여 댐의 높이를 높인다.
그러나 1946년 댐이 범람하면서 세 번째로 한 번 더 공사를 하게 되며 높이를 더 끌어올리게 된다

기초 공사는 1952년 시작됐으며 가말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로 미국과 영국이 자금 제공에 합의한다.
총 2억 7천만달러를 차관 제공하기로 한 것은 나세르가 아랍 세계-이스라엘 전쟁 기미를 막는 데 협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 양국은 나세르를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자 비밀 회담을 열면서 1956년 7월 차관 제공을 철회한다.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사실 공사 완공 전인 1964년 미리 수원 저장을 시작하였으며 총 수원 한계량을 1976년에 처음으로 채우게 된다.

그러나 수원 저장의 계속적인 증가는 인류학자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주위에 산재했던 고고학적 유물 때문으로 60년대 유네스코는 문화재 구조 작업에 나선다.

문화재 유적지 탐사 밑 24곳의 주요 장소가 옮겨졌다.
대표적인 곳이 아부 심벨 신전이다.
마드리드와 뉴욕등 세계 여러 기관과 많은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수몰 위에서 구해 내었다.

이집트 자체로는 아랍계의 오스만 아메드가 발굴 작업을 주도했으며 그의 경쟁자를 물리치며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는 당시 소련이 제공한 물자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으며결국에  소련 기술자들을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아스완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나일강변에 정박 해 있는 크루즈선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2.3.4층에 있는 객실중 2~3층에 주로 배치 되었고 우리 부부는 2층에 배정 받았다.
앞으로 이 크루즈선을 타고 3박4일간 나일강을 따라 룩소르 까지 내려 가면서 나일강 주변에 있는 유적들을 둘러 본다.

크루즈에는 평균 승객 130명, 직원 70명 정도 탑승한다.
선상에서는 매일 밤 누비안 댄스 쇼, 라이브 음악 공연 등 화려한 쇼가 펼쳐진다

 

이 크루즈선은 우리 부부가 남미 일주 47일때 타본  크루즈나 일본 크루즈때 타본 에메랄드 프린세스호나 코스타호 같이 호화 쿠루즈는 아니지만 그런데로 타볼 만한 크루선이다. 

모든 시설과 식사나 즐길 프로그램은 부족하지만 그 호화크루즈선 보다 켄빈(객실 방)은 더 좋은것 같다.
케빈내 공간이 그것 보다는 거의 2배는 넓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땐 망망 대해 바다를 항해 하는 것이 였기에 기항지에서 기항지로 이동하는 동안 망망 대해 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남미땐 기항지에서 기항지 까지 꼬박 2박 3일간 항해를 한적이 몇번씩이나 거듭된적도 있어 지루 했는데 요번은 나일강을 따라 강줄기를 따라 내려 가는 것이니 강주변 풍경을 감상 할수 있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번 크루즈는 짧은 일정이고 하루에 몇번씩 유적지 근처에 정박 해주니 좋고 이동하는 몇일간 짐을 싸지 않고 장거리를 버스를 타지 않아서 너무나 좋다.

우린 방을 배정 받고 점심 식사를 한후 휴식을 취하며 5층 갚판에 올라 전체 시설도 둘러 보고 다음 일정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다음 일정은 해질 무렵 이곳의 명물인 바람만을 이용해서 달리는 돛배 페니카나를 타고 나일강의 선셋을 즐긴다.
그때 까진 지금 까지의 피로를 씻으며 사워도하고 자유시간이다.

우린해질 무렵 펠루카를 탔다.
펠루카는 무동력으로 돛을 이용해서 움직이는데 두 사람이 운전했다.
앞에서 돛을 올리고 방향을 잡으며, 뒤에서는 노로 물길을 잡거나 키를 내리고 올리는 역활을 한다.

바람이 정 방향 일때는 모터가 달린듯 빠르고 역방향일땐 속력을 내지 못했다..
그런덴 갈지자 모양으로 거거나멈춰 서기도 하지만 키를 잡은 사공이 잘 조정한다
재미있는 장면은 어디선가 카누를 탄 꼬마 2명이 손쌀같이 우리 곁을 오더니 뱃전을 붙잡소따라 오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 공연은 1달러의 용돈을 위해서 였다.
그리고 1시간 여쯤 유람을 하고 나니 동행 했던 사공 한명이 무언가 펼쳐 보였는데 이곳 기념품 들이다.
사공인지 알았는데 기념품을 팔기 위해 동승 해서 봉사하며 친근감을 가진후 기념품을 파는 상술.....

우리 말고도 여러개의 페루카가 나일강을 활보한다.


페루카에서 본 우리가 탄 크루즈 전경.

아름다운 나일강에서 선셋을 보면서

미완성 오베리스크 입장권 80파운드 한화 약 5,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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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이집트 아스완 아부신벨 넘세스 2세 신전 4편

이집트 도착 3일차 이날은 새벽 같이 일어나 모닝커피와 샌드 한조각을 먹고 크루즈에서 준비 해준 아침 도시락을 사들고 아스완 크루즈선에서 내려 아부심벨로 간다.
사막애서 일출도 보고 남쪽으로  남쪽 으로 3시간을 사막위에 끝없이 벋은  고속 도로를 달려 아부신벨 신전으로.....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280km지점에 위치한 아부심벨은 대규모 암굴신전이 자리잡고 있다.
얼마전 전 까지만 해도 이곳은 안전상의 문제로 이집트 군인의 호위 아래 이동이 가능하고, 이동시간도 하루 두번으로 제한 되어 있었다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출 무렵 부터 일몰전 까지는 검문 초소에서 검문만 받으면 출입이 가능 해 졌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을 출발 사막위의 고속도로를 따라 나일강 상류로 3시간 정도 가면 도착 할수 있었다

우린 아부신벨1시간 정도 남겨 놓은 지점에 있는 커피샵에서화장실도 가고  커피와  준비 해준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또 신전으로 향했다

이제 아부심벨 신전 입구가 보인다.
풀 한포기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한 대지 위에 람세스 2세가 건축한 대신전과 소신전이있단다.

이곳에 있는  아부심벨신전은 전편에도 소개 했듯이 원래 위치보다 나일강 상류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옮겨져 재건된 것이다.
나일강을 막아 아스완댐을 건설할 때 아부심벨신전이 수몰될 것을 염려해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해 왔던 것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유네스코와 세계 여러 단체와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두 개 신전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대공사를 10년 동안 벌인 것이다.
아부심벨신전에 입구에 가면 그 당시 공사 현장의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아부심벨신전은 전편에도 소개 했듯이 원래 위치보다 나일강 상류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옮겨져 재건된 것이다.
나일강을 막아 아스완댐을 건설할 때 아부심벨신전이 수몰될 것을 염려해 더 높은 지역으로 이동해 왔던 것이었다.

이집트 정부는 유네스코와 세계 여러 단체와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두 개 신전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대공사를 10년 동안 벌인 것이다.
아부심벨신전에 입구에 가면 그 당시 공사 현장의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아부심벨 신전 발견은 1813년스위스 역사가 부루크 하르트가 현지 안내원을 데리고 람세스 2세 왕비 네페르타리에게 봉헌된 사원을 찾으려고 나일강 상류에 도착하였다.

두 바위 언덕 계곡에는 모래만 가득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한동안 헤매다가 모래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았을 때 절벽에 거상 머리가 모래 속에서 삐죽이 나와 있었한다.
그 때 까지만 해도 그것이 입상인지 좌상인지 무슨 신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1817년 8월 지오바니 벨죠니란 사람이 신전을 덮고 있던 모래를 걷어냈다.
그리고 이 방면에 관련해 유명했던 탐험가, 화가, 고고학자들을 이 신전에 모두 초대하였다.

아폴리토 롯세리니, 살베이토르 체루비니, 프랑스 화가 네스톨 오테, 상형문자 해독자 장 프랑스와 샹폴리옹, 트로이 유적 발굴자이자 독일 고고학 탐험가인 하인리히 슐리만 등 당시 고고학 대가들이 이 신전을 고증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들은 이 신전이야 말로 이때껏 발굴한 이집트 유적 가운데 최고의 예술품이라 입을 모아 극찬했다고 한다..

그렇게 발견된 아부심벨이 위기를 맞는다.
아스완 로 댐을 건설하고서도 나일강의 범람을 완전히 조절하지 못하며 급증하는 인구를 유지할 농산물 생산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59년, 이집트 나세르 정부는 나일강의 범람을 확실히 조절하고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해 로 댐 남쪽 6km 나일강 상류에 대규모 다목적 댐인 아스완 하이 댐을 소련의 기술과 차관으로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처음 소련과 독일의 합작으로 주도하고 미국과 영국도 개입되는 우여곡절을 격으면서 1972년 완공된 아스완 하이 댐의 폭이가 3,830m , 높이가 110m, 저변 두께가 130m, 저수량 1,800 억m3, 여기에서 얻어지는 발전량은 100억 kwh 규모의 세계 최대의 댐이 되었다.

그 결과로 길이 약 500km에 ,폭 평균 30km에 달하는 거대한 나세르 호수가 형성되었고 나일강 상류의 넓은 지역이 사막에서 옥토(관계농토 68,500km2/농업경제 상승률35%)로 변하였다.

이 하이 댐 덕분에 나일강의 홍수를 조절하고 강 유역에 항시 물을 공급할 수 있어 농산물 증대에 획기적 결과를 가져왔다.
당장 농산물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었다.
초대 대통령 낫세르가 이집트 1,000년을 보고 밀어붙인 농업정책의 결과에 대해 평가하기는 또 다른 문제도 제기 되었다.

그 당시에는 환경엔 별문제가 없었는데 문화단체의 반발에 부닥쳤다
그후 현재는 환경문제도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문제가 대두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이 지역의 수위가 182m가 되고 아부심벨 신전 수위 120m 보다 62m초과되어 카라브샤 신전, 아부심벨 신전 등 누비아 지방의 수천 년 문화유적지가 모두 수몰 위기에 들어 가게 된것이다.
3,000년 이상 장구한 세월을 견뎌온 24개의 고분과 사원 등 석조 유적지가 물속에 잠기게 되는....

이집트 낫셀 대통령은 소련에 이 사원들의 구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되었고 전 세계 고고학자, 역사학자들이 이 세계적 문화유산을 보존해 주도록 그에게 탄원했으나 그 역시 나라의 천년 대계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 학자들은 국제사회에 호소했고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누비아 유적보호에 전례 없는 대규모 국제 캠페인을 전개했다.
유적보호 자금이 모이고 별별 보호방법이 제안되었다.

그 중에서  이태리의 제안에 따라 아부심벨 신전을 당초 위치에서 64m 높은 쪽으로 그리고 180m 안쪽으로 들어간 지점에 당초의 바위 언덕과 같은 인공 바위 언덕을 만들기로 하였단다.

인공 바위 언덕은 콘크리트 셀 구조로 그 안은 넓은 무주공간이었다.
여기에 신전 내부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암벽표면과 암굴내부에 만들어진 조각품들을 사방 3m 크기(중량 30톤 이하 되게)로 760개(총중량 11,600톤)를 절단하여 상부에 있는 인공 콘크리트 산에 옮기는 대공사가 1963년 11월 착공하여 1968년 4월 준공했다.
이렇게 아부심벨은 위기에서 구해졌다.

신전입구 옆문을 통해서 복원된 신전 뒤로 들어가 인공 산(山)  콘크리트 구조물의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 벽에 설치된 안내판에 '유네스코가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하기 위해 이 구조물을 건설했다'는 내용의자료드리이 있었다.

위기에서 구해진 아부심벨 대신전
나세르 호숫가에서 보아 왼쪽 바위 언덕에 위치한 람세스 2세 신전이 보인다.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왕 람세스 2세(BC 1279~1213 재위)가 지은 2개의 신전 유적이다..

주신전 앞에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 좌상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장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집트 아스완 행정구 코로스코(지금의 쿠루스쿠)의 남쪽, 나일 강 서안의 사암절벽을 깎아 만들어 졌던 신전이었다.

위기에서 구해진 아부심벨 대신전
나세르 호숫가에서 보아 왼쪽 바위 언덕에 위치한 람세스 2세 신전이 보인다.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왕 람세스 2세(BC 1279~1213 재위)가 지은 2개의 신전 유적이다..

주신전 앞에 있는 4개의 거대한 람세스 좌상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장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집트 아스완 행정구 코로스코(지금의 쿠루스쿠)의 남쪽, 나일 강 서안의 사암절벽을 깎아 만들어 졌던 신전이었다.

 

대신전 전면은 암벽에 38m 폭, 31cm 높이의 벽면을 닦고 그 앞에 앉아 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 4좌를 조각했다.
그 4개의 좌상중 하나는 발견 당시의 상체가 파손되고 없는 그 자체로 옮겨와 조립 해 두었다.

거상 뒤 바위 벽면 가장자리에 볼록 테두리를 돌리고 그 위에 2.5m 높이의 코니스를 두었다.
코부라 무늬로 장식한 코니스 위에 22마리 바분이 한 줄로 앉아 있다.
그 바로 아래에 상형문자로 람세스 2세의 업적을 밴드처럼 새겼다.

벽 가운데에 사각 감실을 두고 그 안에 태양 원반과 매 머리를 한 '하 호라크트 여신'을 조각하여 세웠고 감실 좌우에 젊고 발랄한 람세스 2세가 감실 안에 있는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부조를 얇게 새겼다.
라 호라크티 여신은 동쪽 지평선에 떠오르는 어린(아침)태양신이며 하 이집트의 지방신이다.

20m나 되는 람세스 좌상은 움푹 들어간 절벽을 등지고 있으며 2개는 주신전 입구 양쪽에 하나씩 놓여 있다.
이 좌상의 발 둘레에는 람세스의 왕비 네페르타리와 자식들을 상징하는 작은 상이 조각되어 있다.
조각상 높이만도 20m. 당시 그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남쪽에 있는 1쌍의 좌상에 새겨진 낙서들은 BC 6세기에 이집트 용병으로 복무하던 그리스인들이 새긴 것으로 초기 그리스 문자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 신전 자체는 태양신인 아몬 레와 레 호라흐테에게 바쳐진 것이며 절벽 안쪽으로 56m를 파서 만든 3개의 연속된 홀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람세스 2세의 전투 장면과 그의 부인 네페르타리의 모습이 조각된 벽화를 볼 수 있다.
신전 내부는 왕의 여러 조상과 함께 왕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여러 채색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내부는 절대 촬영 금지다..

이 신전은 1년에 어느 특정한 며칠간은 하루의 첫번째 햇살이 신전 전체를 꿰뚫으며 들어와 가장 안쪽에 있는 성소 제단까지 비치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대신전 내부에는 4개의 신상과 이집트 통일 과정을 세세하게 조각해 놓은 벽화들로 가득했다.

내부의 기둥실은 18m 길이, 16.7m 폭의 장방형 홀이며 거기에는 오시리스 신의 모습을 한 10m 높이의 람세스 2세의 젊은 입상 8개가 기둥이 되어 두 줄로 서 있으며, 왼쪽 오시리스는 상 이집트의 흰 왕관을, 오른 쪽 오시리스는 하 이집트의 이중관을 쓰고 있다.

팔은 가슴에 포개고 손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왕홀과 도리깨를 들고 있고, 네이브 천장에는 상 이집트의 수호신인 네크베트의 큰 독수리 문양있다
아일 천장에는 별들 문양을 그렸다고 하며, 가운데 성소에는 누비아 3신 프타, 아몬라 신이 된 람세스 2세, 하르마키스  신이 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앉아 있다

또한 그 방 양쪽 벽에는 람세스 2세가 카데쉬 전투에서 히타이트와 벌인 대규모 전투 장면을 그린 벽화를 새겨 놓았다고 하며 거기에 있는 상형문자는 역시 카데쉬 전투에서 람세스 2세의 군사적 승리와 왕의 용감성을 찬양하는 노래와 시라고 하는데 승자는 역사를 만든다는게 맞는 말인것 같다.

이런 아부심벨 신전은 철학적 종교적 개념을 건출하게 표현한 보기 드문 건물이라고 하는데 특이한 점은 신전 탑문 전체를 붉게 비친 태양은 정문으로 들어가 암굴 안을 비춘다.

원래는 람세스 2세의 생일인 3월 21일과 대관식 기념일인 10월 21일에는 해마다 아침 해의 첫 햇살이 65m나 되는 암굴 신전의 가장 깊숙한 지성소까지 들어와 아몬신과 람세스 2세를 환히 비추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신전을 옮겨서 새로 지은 뒤에는 이런 현상은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각가 파아이는 바위 한덩어리로 신전을 조각했다고 하는데 바깥의 람세스 2세 거상 4구를 대강 깍아 남기고 그 뒤 절벽 파사드를 70도 경사지도록 비스듬하게 절삭하여 신전 탑문 윤곽을 이룬후에 중앙 출입문 다주실 전실 창고실 성소 순으로 파고 들어갔단다.

마감은 역순으로 하여 성소와 벽과 기둥을 조각했다고 하는데 바위산 하나로 이음 없이 신전 하나를 완성했다는것에 경의로운 일이다. 찬사를 보낸다.

난 이집트 여행을 앞두고 아부심벨은 꼭 방문 해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처음 만든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그 모든것을 큰 산을 옮겼다는 현대인들의 능력도 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마눌 로사와 같이 촬영한 사람은 현지인이 아니고 우리 일행의 변신 입니다.
IS가 나타나도 살아 남겠죠

이제 옆쪽 소신전으로 이동한다.

아부심벨 소신전
대신전 옆에는 소신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여신 하토르를 경배하기 위해 왕비인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것이며 10.5m 크기의 왕과 왕비의 조상으로 장식되어 있는 아담한 규모의 신전이다.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 4개와 네페르타리 왕비 입상 2개가 서 있고 조각상 밑으로는 자식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좁고 높은 장방형 벽감 6개 안에서 높이가 거의10.5m나 되는 왕과 왕비가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태양빛을 향하여 걸어 나오는 그런 자세로 왕 좌우에 두 왕비가 한 조로 하여 두 조를 세우고 다리 사이에 어머니, 딸, 아들의 미니석상을 두었다.

그리고 소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기둥 6개가 있는 기둥실이 있으며 복도로 향해있는 기둥면의 주두에 하토르 신의 두상을 조각해 놓고 그 밑에 왕과 왕비에 관한 이야기를 상형문자로 새겼 두었다.

또한, 기둥의 다른 면과 방 벽에는 온통 네페르타리 왕비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네페르타리 왕비가 하토르 신으로 보이도록 신성한 암소처럼 뿔을 달고 태양원반과 두 매부리 깃을 달고 있다.
람세스 2세는 그의 왕비와 함께 죽어서도 아몬신과 하토르신이 되어 부활한다는 믿음을 표현했다고한다.

 

대신전 옆에 위치한 소신전에는 왕과 왕비의 이야기가 새겨진 기둥과 왕비의 석상이 있다.

이제 아부심벨을 모두 둘러 보았으니 뒤편 내부 자료실을 둘러 보러 간다.

그 옛날 옮겨져 오기전의 아부심벨의 모습이다.

우린 다시 갔던 길 3시간을 달려 크루즈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를 태운 크루즈선은 아스완을 출발 곰옴보로 향한다.

점심 식사후 5층 갑판에 올라 강 주변을 관망한다.

높은 다리 밑을 통과할 쯤에 다리 위에서 우리를 향해 환영의 손짓을....

강변엔 초원도 보이고 평화로이 풀을 뜯는 소들도 보인다.

사막의 헐벗은 산아래에 힘차게 달리는 기차도 보인다.
우리도 저 기차길을 따라 아스완으로 왔던 것이다.

입장권 200 파운드 1달러 17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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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이집트 코옴보신전/악어신전 5편

우린 아스완에서 북쪽으로 나일강 크루즈로 50km를 달려 해질 무렵에 코옴보 신전에 도착 했다.

이곳은 이집트의 농업 도시로 코옴보 신전은 나일강변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 신전은 그레코 로만기인 기원전 332년에서 395년까지 약 60여년에 걸쳐 세워졌다고 한다.

제18왕조의 건축물도 일부 남아 있는데, 코옴보 신전의 특징은 악어 머리형상을 신과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신에게 바쳐진 것이라한다.
이 두 사원을 일컬어 코옴보 신전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악어 머리를 한 신인 세바크를 기리기 위해 지어 졌다고 했하며
그 건설 목적으로 인해 악어 신전이라고도 불리우며 이집트에서는 보기드문 이중 구조 양식을 띈 신전이다.

신전옆엔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할수있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또 다른 자료는 이 우물은 세례를 위하여 사용되던 신성시 된 물이라 하네요
그리고 신전옆 지하공간엔 악어 박물관이 있고 악어 미이라도 볼수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내부는 절대 촬영 금지 였다.

코옴보 신전의 내부에는 다양한 벽화가 있는데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람세스를 표기하는 벽화,전쟁의 포로,심지어 산부인과 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볼수 있다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이 우물은 세례를 위하여 사용되던 신성시 된 물이라 하네요

다시 크루즈선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동....

입장권 700 파운드 1달러 17파운드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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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이집트 에드푸 호루스신전  6편

이날도 새벽 같이 기상 해서 커피 타임을 가진후 크루즈 기항지에서 가까이 있는 에드푸 신전 일명 호루스신전으로 향한다.

이날의 교통편은 이곳의 명물인 꽃마차를 타고 왕복했다.
일출전에 에드푸 크루즈항엔 수십대의 꽃마차가 대기중이고 우린 한대에 2명씩 탑승이다

동이 트오르는 나일강 일출전에 크루즈선 4층 카페에서 커피타임을 하고 꽃마차를 타고 호루스 신전으로 이동...

에드푸(아랍어: العلمين)는 나일 강 서안에 위치한 이집트의 도시로, 룩소르와 아스완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다.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인 호루스에게 봉헌된 에드푸 신전은 기원전 237년부터 기원전 57년까지 건설된 신전이며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신전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91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도 숭배를 금지 시키고 오래잖아 사막의 모래와 나일강 퇴적물에 덮여 1798년에는 관문의 윗부분만 보이고 쌓인 모래 위에 작은 마을도 생겼다고 한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전이 모래에 완전히 덮히기 전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안에 있던 우상들을 불태우고 벽화를 훼손한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도 남아있는 정교한 벽화를 통해 고대 이집트의 언어와 종교를 공부할 수 있어 유명하고 중요한 유적지이다.

호러스의 이야기 대충 아래와 같습니다.
이집트를 다스리던 신 오실리스의 동생인 사막의 신 셉트가 형을 죽이고 관에 넣어서 나일강에 버렸다.
오실리스의 아내 이시스가 150년만에 오실리스의 몸을 찾아왔는데, 셉트는 오실리스의 몸을 16토막 내서 이집트 여기저기에 숨겨버렸답니다.

이시스가 다시 찾아다녔는데 15조각은 찾았지만 나일강에 버린 성기 부분은 물고기가 먹어버려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깎아 성기를 만들어 붙이고 넵티스가 생명을 불어넣어 오실리스는 부활했습니다.

이시스는 개의 모습으로 변해서 오실리스의 아기를 잉태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호러스입니다.
이시스는 호러스를 키워서 아빠의 원수를 갚도록 준비시키고 이 일을 태양신 라 에게 보고해서 싸움을 허락받습니다.

호러스는 엄마 이시스가 준 마법의 창을 가지고 셉트와 싸웠지만 패하여 오른쪽 눈을 잃게됩니다.
그렇지만 부인인 합토르가 눈을 치료해주고 태양신 라가 날개와 빛을 주어서 호러스는 셉트와 두번째로 싸우게 됩니다.
여기서 호러스가 이기고 셉트는 하마의 모습으로 나일강으로 도망치는데 호러스가 따라가서 창으로 찔러 셉트를 죽입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하마 모양의 셉트 모형을 만들어 물에 넣고 파라오가 창으로 찔러 잡으면서 셉트 잡기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호러스 = 파라오 라는 의미. 파라오는 호러스의 대행자로 동일시 되었답니다.

그리고 호루스신전은 호루스의 부활의 의미도 갖고 있어 산모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서도 많이 찾는 곳이란다.

신전 입구에  호루스의 조각이 있다.


우린 호루스 신전을 모두 둘러 보며 현지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기념품상 앞을 지나 타고갔던 마부와 말의 번호를 찾아 타고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 크루즈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참 편한 여행이다

돌아오면서 본 시가지 풍경...낙후하다.

입장권 140파운드 1달러가 17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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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까지 올려 오던 여행 후기를 사이트 용량과 이후기가 너무나 뒤로 뭍혀서

계속 이어갈 의미가 없는것 같아서 에드푸에서 룩소르 까지 이동하는 크루즈에서의 이야기인

7편 까지만 올리고 1인 한편으로 제한 대어 있어 룩소르에서 8편 부터 최종회 14편 까지는

저와 여행을 같이한 아내가 이어갈 예정입니다. 참고 하시길....

2018.11.16. 이집트 에드푸 룩소르 크루즈 7편

에드푸에서 크루즈선으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는중에 배는 다음 목적지인 룩소르로 향헤 출발 했습니다.

룩소르 도착 예정 시간은 오후 3시 전후다.
우린 휴식을 취하며 쉬다 크루즈선 3층 레스토랑에서 쥐페식 점심식사후 재가 정박하면 하선하면 된다.

 

아침식사후 5층 갑판에서 산책도하고 강주변 풍광들도 내려다 보며 즐기다 방으로 돌아와 부족한 수면도 즐기고 창가 풍경도 보면서 사진들을 정리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에 출발 1월에 끝낸 미국 엘에이 출발  남미 일주 47일 트루즈때 보다는 또 다른 맛이다.

그땐 이크루즈선  보다 규모도 엄청 크고 시설도 잘 갖추어진  초호화판 크루즈 선이었지만 방은 이것보다 협소했고 전체 규모는 너무 크서 오히려 불편 했다.

총7.000명 승선에 13만톤급 18층 규모였으니 이동 거리와 승하선시 혼잡함도....
그리고 긐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 대해를 몇일씩도  항해를 했으니....
요번엔 기항지간 거리도 짧고 강을 달리니 주변 경관도 즐길수 있어 넘 좋다.

 

 

 

방에서 쉬고 있는데 크루즈선의 속도가 떨어지고 멈추는듯 해서 목적지가 갘가워 졌나 해서 5층 갑판에 올라와 보았드니 앞에 댐이 보였고 그 땜을 통과 하기 위해 속도를 줄인 것이다.

댐은 본댐과 아래에 보조댐으로 되어 있었다.
우선 본댐 관문을 통과한후 보조댐 관문으로 간후 관문을 막고있는 수문을 열어 독크 칸막이에 물을 채워  상류댐과 수차를 없엔후 배가 들어간후 상류 압구를 차단하고 다시 물을뺀후 하류와 수위를 맞춘후 하류쪽 수벽을 열고 통과는 방법이다.

오랜전 우리나라 대운하를 걔획하면서 방송에 소개된바있고 그당시 유럽 6개국 물갈따라 대운하 텀방 자전거 투어를 하면서 본적이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배를 직접 탄 상태에서 댐을 거슬러 애려 가 보는 것은 첫 경험이다.

 

 

 

 

관문을 통과 하는 동안에 또 다른 이색적인 장면을 보았다.
우리 크루즈에 바짝 붙어서 따라 다니는 작은 보트들이 보인다.
난 그 보트들이 갈잡이를 하는것으로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고 기념품 이불인지 카페트인지를 파는 장삿꾼들이다

 

 

 

 

 

 

이들은 관문 주의에서 크루즈선이 속도가 없는 틈을 이용 수면애서 부터 5층 갑판을 쳐다 보면서 수공예품 카펫을 펼쳐 보아며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주문을 받고 5층 갑판 까지 그 상품을 던져 올리며 판매한다

물론 실수를 대비해 그 상품은 비밀애 잘 포장되어 물ㅔ 떨어져도 괜찬다.
그리고 물건을 받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보트로 던져준다.

그리고 돈은 여유분 물건을 던져 올려 그속에 넣어 던져 주는듯....
그런데 아래서 던지는 장삿꾼은 실수가 없는데 위에서 던져 내려주는 사람들은 실수가 많다.

아것도 아곳애서만 볼수있는 명물아며 묘기안것 같아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을듯....

위에 독크에 우리뱌가 들어가기 위해 물을 채운다.

 

물이 목적한데로 채워지고 수문이 열리면서 우리배는 독크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우리가 들어온 상류쪽 수문을 막고 하류쪽우로 독쿠에 물을 빼서 수위를 맞춘후 우리 독크를 빠져 나간다.

우리가 통과하는 시간댜에 우리말고도 한대가 더 았었고 두대가 동시에 뒷따라 통과했다

이렇게 우린 다시 룩소르로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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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여행 후기를 1인 한편으로 제한 되어 있어 많이 아쉽다.

9일간의 여행을 한편으로 압축 해서 기록 한다는 것이 제대로 표현 할수있는 여행기가 될수 있을

노랑풍선에 묻고 싶도 개선을 바래본다.

아직 7편이나 남은 여행기는 어디에다........

이제 이것으로 저의 이집트 여행기는 7편으로 끝내고

8편 부터는 저와 같이 여행한 저의 아내가 이어 갑니다.

 

후속편은 제 개인 밴드인  이곳에서도 보실수도:https://band.us/n/aea6Y7LcR8fb9

알림 본 여행이야기는 고객님께서 직접 다녀온 여행상품에 대해 작성하신 이야기입니다.

노랑씨 이미지 유럽6팀(2018-12-06 16:10)
안녕하세요 노랑풍선 여행사입니다. 사내 교육자료로 써도 무방할 만큼 양질의 후기와 멋진 사진들 남겨주셔서 감사드리며, 항상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